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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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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을 통한 정체성 혁명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단순히 암송해야 할 기도문이나 종교적 의식의 한 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변화시키는 정체성의 선언문이며 혁명의 청사진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청하고 구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정의하고 선포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아뢰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도구나 수단으로 잘못 이해하지만, 예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본질은 전혀 다르다. 기도는 외부 상황을 바꾸거나 하나님을 설득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위치와 방향을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재정렬하는 영적 사건이자 변화의 과정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시고, 이어지는 7장에서는 "그 기도가 어떻게 삶으로 살아지고 증명되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신다. 기도와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정체성과 윤리는 하나로 긴밀하게 묶여 있고 연결되어 있다. 주기도문은 우리의 언어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정체성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1절: 존재의 정체성: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의 가장 첫 문장이자 출발점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인간의 존재를 성취나 업적, 능력이 아니라 관계로 근본적으로 정의하고 재정의한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지거나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나오고 그분께 속한 존재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창조된 자녀들이다. 이 기도는 인간을 고아나 경쟁자, 생존자, 또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투쟁자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로 완전히 새롭게 부르고 정의한다. 정체성의 진정한 혁명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에게 속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다는 거리감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초월하시 되 우리와 단절되지 않으시며, 권위를 가지시 되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선포한다. 이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을 통제하거나 조작하려 하지 않겠다는 겸손한 선언이며, 그분의 주권과 지혜를 온전히 신뢰하겠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진정한 정체성은 우리가 무언가를 통제하고 장악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의지할 때 비로소 확립되고 견고 해진다.

 "우리 아버지"라는 복수형 표현은 우리의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적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신앙은 개인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고립되거나 분리된 개인주의로 축소될 수 없으며, 항상 형제자매들 과의 연대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혼자 창조되지 않았고, 혼자 구원받지 않았으며,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책임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고백하게 된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단순한 종교적 용어가 아니라, 우리의 기원과 보호, 책임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지속성을 모두 포함하는 관계의 언어이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며 이미 고백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우리의 아버지이셨다는 영원한 진리이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태도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변치 않는 존재와 사랑이 우리의 태도와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첫 문장이 만들고 형성하는 정체성은 우리 삶 전체의 토대가 되며, 모든 선택과 관계의 기준이 된다. 나는 혼자 고립된 섬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속하고 그분과 연결된 자녀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안전하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고 입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은 존재이며, 더 이상 자격을 얻기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들과 함께 존재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아니라, 신실하신 아버지에 대한 깊은 신뢰와 확신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확립은 우리를 세상의 기준과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진정한 안식과 평안 가운데 거하게 한다. 주기도문의 첫 문장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우리 존재 전체를 재정의하는 혁명적 선언이며,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기초이다.

 

2절: 관계의 정체성: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언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절대적 중심이자 주인으로 모신다는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목적이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거나 조작하려는 모든 시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만든다. 관계의 정체성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외와 친밀한 사랑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온전히 형성되고 성숙해진다.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분의 본질적인 성품 자체이며, 그 성품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경험된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예배당이나 교회 안에서만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는 이중적 삶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사용과 작은 선택들, 사람들 과의 관계 맺는 방식이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정체성은 입으로 하는 말이나 고백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태도와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되고 확인된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오며"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접근하지 말라는 거리감의 언어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의 질과 깊이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정의한다. 거룩함은 접근 금지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경외심 속에서 누리는 진정한 친밀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친구처럼 가깝게 부르고 교제하되, 결코 가볍게 대하거나 함부로 여기지 않는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것은, 기도 속에서 조차 하나님을 우리의 계획을 승인하고 도장 찍어주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참된 관계는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달라고 하는 것보다, 우리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깊이 인식하고 아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말하는 대상이 누구이신 지를 진정으로 아는 순간, 기도의 태도와 자세는 자연스럽게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래나 협상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이며, 요구의 시간이 아니라 경배와 예배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이 관계의 기도가 만들어내고 형성하는 정체성은 우리의 모든 관계와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나는 하나님을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 소비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을 있는 그대로 경배하고 예배하는 예배자이다.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내 뜻대로 조작하거나 움직이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 자신이 그분의 뜻에 맞춰 지기를 구한다. 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고 높이며, 내 행동이 그분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과의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증인이자 편지이다. 이러한 관계의 정체성은 우리를 종교적 의식주의나 형식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가게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삶은 특별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다.

3절: 목적의 정체성: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특정한 지리적 공간이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질서와 영역을 의미한다. 이 기도는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이며, 우리 삶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선포한다. 나는 내 계획과 꿈, 야망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더 크고 영원한 이야기의 일부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목적의 정체성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용기와 결단에서 시작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은 체념이나 포기의 언어가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의 언어이며, 그분의 지혜와 계획이 우리의 제한된 이해보다 훨씬 뛰어남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가능성을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회복시키고 완성하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은 때로 고통과 어려움을 포함할 수 있지만 결코 의미를 잃거나 헛되지 않는다. 목적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고 나를 통해 일하시겠다는 초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자 헌신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는 세상과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세상 한가운데서,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질서와 가치관으로 살아가겠다는 담대한 선언이다. 정의와 자비, 진리와 사랑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 일상이 되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은 편안함이나 안락함을 보장하지 않지만, 깊은 의미와 영원한 가치를 보장한다. 우리의 작은 계획이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재정의되고 재해석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목적의 기도가 만들어내는 정체성은 우리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완전히 재정렬한다. 나는 세상적 성공이나 인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칙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한다. 나는 단순한 소비자나 방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도록 보냄 받은 사명자 이자 대사이다. 나는 순간적인 편안함이나 즐거움보다,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선택하는 존재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이루어가는 능동적인 동역자 이자 파트너이다. 이러한 목적의 정체성은 우리를 이기적인 삶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더 크고 의미 있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게 한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은 우리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회복하는 길이다.

 

4절: 삶의 적용의 에서 일어나는 공급과 용서와 의존의 정체성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필요만을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의 필요까지도 세심하게 아시고 삶으로 적용하시면서 채워 주신다.  삶으로 적용하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이 기도는 우리의 끝없는 탐욕과 축적의 욕망을 제한하고, 하나님에 대한 날마다의 신뢰를 훈련시킨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오늘의 끊임없는 축적과 저장으로 해결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을 충실히 살수 있도록 적용하시고 부르신다. 이 기도는 "충분함"과 "만족"의 기준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재정의하며, 우리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많이 가지고 축적했기 때문에 평안하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기 때문에 진정한 평안을 누리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현재로 불러내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우리에게"라는 표현은 다시 한 번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필요를 함께 적용하며 구하도록 한다.

이 공급의 기도가 형성하는 정체성은 우리의 경제관과 소유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변화시킨다. 복음의 정체성으로 실제 생활에서 적용을 받은 사람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여 끊임없이 저축하고 축적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존재이다. 나는 많이 소유함으로써 안전을 얻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진정한 안전과 평안을 누린다.  복음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내가 가진 것으로 내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나는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도 관심을 가지고 나누는 존재이다. 이러한 공급의 정체성은 우리를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진정한 만족과 감사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매일 하나님께 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의존성을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날마다 새롭게 하게 된다.

-삶으로 적용하는 용서의 정체성: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용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이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은혜를 받은 자는 반드시 은혜를 흘려 보내야 하며, 용서받은 자는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미워하는 것은 심각한 영적 모순이며, 자기기만이다. 용서는 상대방이 변하거나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는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내리는 의지적 결단이며 선택이다. 용서는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 보내는 구체적인 행위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붙잡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용서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움과 분노에 묶여 있는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해방의 행위이기도 하다.

이 용서의 기도가 만들어내는 정체성은 우리의 모든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나는 미움과 분노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지 않으며, 용서와 화해를 실제로 살아내는 존재이다. 나는 상처를 영원히 붙잡고 살아가는 피해자가 아니라, 용서함으로써 자유를 누리는 승리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셈하는 회계사가 아니라, 은혜로 덮어주는 사랑의 실천자이다. 나는 복수와 보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치유를 추구하는 평화의 사람이다. 이러한 용서의 정체성은 우리를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용서하는 삶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의 표시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삶으로 적용하는 의존의 정체성: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이 기도는 우리의 근본적인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는 겸손의 표현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신하지 않으며, 우리의 의지력만으로는 유혹을 이길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길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겸손히 고백한다. 기도는 유혹 자체를 제거하거나 피하는 마법 같은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유혹을 이기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방향과 힘을 공급한다.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단순히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소극적 요청이 아니라, 악의 세력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하시고 건져달라는 간절한 호소이다. 이 기도는 영적 전쟁의 현실을 인정하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이며, 그분의 인도하심 없이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없다.

이 의존의 기도가 만들어내는 정체성은 우리를 교만으로부터 지키고 겸손 가운데 거하게 한다. 나는 스스로 강하고 능력 있다고 착각하며 교만하지 않으며, 나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한다. 나는 유혹을 과소평가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항상 깨어 경계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한다. 나는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하는 존재라고 착각하지 않으며, 매 순간 하나님께 의존하고 붙어 사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나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필요함을 고백한다. 이러한 의존의 정체성은 우리를 진정한 겸손으로 인도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나타나며, 우리의 의존이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 삶으로 증명되는 정체성: 마태복음 7장의 적용

마태복음 7장은 주기도문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삶으로 증명되고 나타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실제적인 적용 편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 7:7)는 말씀은 기도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체성은 단순히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과 삶의 패턴을 통해 검증되고 확인된다. "비판하지 말라"(마 7:1-5)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고 관계의 기도를 드린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삶의 열매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깊이 경험한 자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으며, 겸손과 긍휼로 대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황금률은 하나님 나라의 윤리가 일상의 모든 관계 속에 스며들어 실천되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정체성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실제 방식과 관계의 질을 통해 드러나고 증명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14)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쉽거나 편안하지 않을 수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임을 선포한다.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는 비유(마 7:15-20)는 진정한 정체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 아니라 삶의 실제 열매로 판단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은 말과 고백이 아닌 순종과 행함이 진정한 정체성의 증거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의 비유(마 7:24-27)는 이 모든 가르침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즉 기도하는 정체성대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인생의 풍랑과 시험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다. 정체성은 위기와 어려움이 닥칠 때 진정으로 시험되며, 그때 우리가 누구인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주기도문은 단순히 암송하는 기도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지탱하는 반석 같은 기초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매일 새롭게 정의하는 정체성의 선언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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