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내용
교재의 시작은 신문 연재에 낸 내용과 각 교재의 질문과 응답으로 방대하게 내용을 다시 각색하고 좀 더 쉽게 만들어 플랫폼을 통해 교재를 업그레이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하여 기존에 적었던 하나님이 주신 청소년 교육과 전도의 은혜를 이 세대에 부모님과 사역자, 성도, 교사를 위한 12 권의 플랫폼 교재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 플랫폼 책 시리즈는 부모님과 사역자, 성경 교사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 폰 환경에 청소년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주며 성경교사들에게 서로의 방법론을 공유하면서 같이 만들어 가도록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성경을 읽는 방법과 원리를 통해 청소년과 초신자들에게 성경이 주는 아름다운 숲을 보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이 과정은 지금 이 순간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중독된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통해 믿음의 성벽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 적었다. 어쩌면 이 책의 목적은 성령 하나님이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의 영과 같이 임재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청소년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하루에 10분씩 성경을 읽는 시간을 내게 하면 된다. 성경 말씀 전체를 예수님의 관점으로 보도록 성령 하나님이 이끌게 하면 된다.
두 번째 이 과정은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비전을 보게 하였다. 마치 전체 성경 말씀을 숲으로 보고 숲에 있는 길을 알려 주는 데 있다. 이것을 성경 관점 관계 원리로 보는 비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성경을 통해 청소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비전과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성경 관점이 관계를 통해 예수님의 의가 들어오면 아버지 하나님이 각자 청소년들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적게 된다.
세 번째 이 과정은 성경 말씀 전체를 통해 받은 성령의 은혜로 각 나무뿌리에서 줄기로 찾아가게 한다. 성경을 뿌리에서 기본 줄기로 찾아가서 성경의 가지 관점의 원리로 보면서 세상을 해석하게 한다. 성경이 뿌리 관점의 기본 줄기에서부터 가지로 이어지는 나무처럼 성령이 해 주시는 말씀을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는지 순서 없이 적었다. 이것을 성경 관점 해석 원리라고 한다. 이를 통해 세상이 성경 관점 관계 원리에서 성령님의 눈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해석되게 하며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유혹에서 믿음의 능력으로 승리를 갖게 되는지 적었다.
네 번째 이 과정은 성경 각가지에서 얻은 해석된 지혜가 적용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 적었다. 예수님의 관점이 성령의 임재와 같이 혼연일체가 되어 청소년들이 가질 직업이나 가치관으로 적용되게 하였다. 이것을 청소년부와 청년부가 있는 교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의 관점을 청소년들에게 적용하는 원리가 있다. 이것을 성경 관점 적용 원리라고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아버지의 관계가 회복되는 탕자의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적었다. 청소년들이 가진 꿈과 비전이 어떻게 세상에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적용사례를 만들어 IT와 접목시키어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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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 29:14~15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
질문) 지금의 스마트폰 중독 시대는 성경에서 어떤 시대와 같은가?
지금 이 세대에 인터넷과 스마트 폰 미디어등이 보여 주는 세상은 거대한 바벨론 같다. 옛날 사로 잡혀서 포로로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면 마치 지금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마찬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낮 설은 곳에서 자기 언어를 제대로 못 쓰고 살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거룩하고 장엄한 이스라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두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문화적 가치관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원래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 생각하여 다른 이방 민족을 개나 돼지처럼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거대한 땅 바벨론에서 이 리 치고 저리 치면서 그들의 문화적 가치관은 변하여 갔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의 자긍심은 없어지면서 점점 더 그들의 생각은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영원한 이방인으로써 큰 나라 바벨론으로 오면서 하나님을 찾은 영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남 유다에서 끌려 온 이후 자기 주관이 없는 그런 포로 생활 속에서 그들은 희망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세운 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주변 상황에 민감하여 안정된 생활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도 망각한 채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그들의 주체성을 상실이 되어 갔다.
지금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수많은 젊은 청소년과 청년 사용자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거대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포로자처럼 거대한 정보의 홍수 묻혀 산다. 스마트폰과 패드 그리고 컴퓨터 게임 같은 미디어를 통해 SNS와 웹 포탈과 미디어에 접속한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하나님의 뜻에 세워서 가르쳐 알아야 할 곳에서 세상이 주는 혼탁한 정보로 매일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살아간다. 또 그들은 거대한 정보의 네트워크에 매일 물들고 그들의 존재감과 그들의 영혼은 세상에 모든 눈으로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과 청년들은 오늘 그다음 날도 매일 같은 스마트폰과 SNS에 중독이 되어 미디어에 접속하여 살아가고 있다. 매일 청소년과 청년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포로수용소처럼 사탄이 주는 정보로 매일 잡혀서 산다. 또 가정에 있는 부모들은 이런 청소년과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해 지적만 한다.
점점 더 청소년과 청년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잃어버린 영혼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아무 주관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망각하면서 살아갔다. 이렇듯이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백성인 것조차 모르고 망각하면서 화려한 세상이 주는 유혹에 휘들려 그들의 영혼의 진리와 길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이런 세대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함께 하는 사람은 없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잘 못된 것을 지적하고 지시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마치 바벨론에서 노예처럼 산 이스라엘 사람과 같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예레미아 선지자를 일으키고 사로 잡혀 떠 났던 예루살렘으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50년 이상의 희년이 지난 간 후에 세 번에 걸쳐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 에스겔을 통해 성경공부와 예배의 부흥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선생님과 부모님을 깨우쳐서 선지자처럼 청소년과 청년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 폰이 주는 악한 영들에게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회복시키면서 믿음의 성벽을 세워야 한다.
인터넷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소통이다. 원래 인터넷의 시작은 끊어진 소통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연구소끼리 끊어진 곳에 다른 곳을 연결하여 우회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끊어진 곳을 이어가는 소통을 일으킨 것이 인터넷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의 복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이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하는 소통과 회복의 성격이 나타난다. 그런데 인터넷의 소통 안에 사탄은 중독되는 악한 영을 넣었다. 많은 유혹의 것을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넣어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악한 영향을 주고 있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이런 많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소통을 중독으로 바꾸는 악한 사탄의 영에 끌려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바벨론 같은 곳이다.
질문) 청소년과 청년들이 과연 누구에게 끌려갔는 가?
요한 계시록 18:2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며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으며
물론 요한 계시록의 바벨론은 다른 곳이다. 그러나 마치 인터넷과 스마트 폰은 요한 계시록의 바벨론과 흡사하다. 특히 수많은 이단과 하나님과 대항하는 영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많은 정보들이 이미 이단의 의해서 더러운 영이 모여서 그들이 판을 치고 있다. 특히 새처럼 왔다 갔다 하는 배교인들이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모인 곳이 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복음에 많은 이단이 선한 것에 악한 것을 넣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중요한 말씀을 인간들에게 주시고 세상의 모든 자원 즉 식물, 동물 생물 등을 지배하라고 하시었다. 창조 후부터 인간들은 산업, 문화나 관습 기술을 통해 이 자원을 소통하면서 모든 자원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인간들이 가진 욕심의 관점으로 주어진 모든 자원을 문화를 만들고 관습을 만들어 잘못 낭비하고 파괴해갔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와 관습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절실하다. 그 세대에 받은 자원을 비유하려면 그들의 생활에 직결되는 문화나 관습으로 비유를 하여만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성경을 이 시대에 주어진 문화와 관습에 맞추어 어떻게 비유를 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무엇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본질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 세대에 맞추어 해석하며 그 복음의 뜻을 알리는 데 있다. 예수님이 당시 시대의 문화와 관습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한 이유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그 당시 어두운 시대에 비치신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쉬운 언어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중요하다. 지금의 성도들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 예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젊은 세대가 좀더 정확하고 쉽게 알기 위해 설명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와 관습등이 반영된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이 지금의 문화와 관습으로 적용시키는 것이 지금 성도들의 할 수 있는 전도가 된다.
질문) 성경 전체에 흐르는 비밀 같은 성격 같은 원리는 무엇일까?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예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성경이 사람들에게 계시될 때는 성령의 관점으로 읽어 야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만든 것은 성령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이렇게 성령의 관점으로 읽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에서 아들로 오신 것처럼 같은 관계 원리인 성령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읽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배로 회복되도록 만드셨다.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아들을 보낸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사랑을 표현하고 세상 사람들과 관계가 회복되면서 예배하시길 바라신 것이다. 우리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시길 바라신다. 사람이 생명을 풍성하게 얻고 풍요로운 자유를 마음껏 누리려면 예배자가 되면 된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예배자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것을 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예배하도록 만들었는데 죄 때문에 영이 죽어 예배자의 삶을 살지 못하였다.
우리가 예배자로서 회복하려면 먼저 영이 살고 그 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삶이 중요하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영적 예배이다. 이렇게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가 바로 관계 회복이 시작이다. 그 영적 관계 회복의 원리는 성경에서 나무의 기본 줄기와 같더, 마치 성경을 읽을 때 숲에서 전체를 보고 호수로 뻗어 있는 시냇가 같은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부단히 생각하여 보았다. 숲에서 호수로 안내하는 시내 같은 것이 있다. 즉 인간과 하나님의 영적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영성의 기본 원리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원대한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작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이것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라고 하고 싶다. 성경의 비밀 원리가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작용되는 것은 각자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은혜가 서로 다르다. 마치 수돗물이 원천의 물에서 수도관을 타고 오는 것과 같이 여러 갈래로 성령이 주는 생명수의 양은 각각 다르다. 이런 원리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만들었니 성경을 읽은 사람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를 통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필자 같은 미천하고 작은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게는 가 하지만 좁은 생각을 가진 필자가 느끼고 추측한 것은 각자의 비밀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 관점 관계 비밀 원리라고 부르고 싶다. 즉 성령 관점 관계 원리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과의 영적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사람의 몸이 산제물로 예배를 드리게 하시었다. 이 연합을 위해 성령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말씀에 있는 생명수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원리에 성령과 생명의 원리에 코칭의 원리를 가미하여 말씀을 질문과 응답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시키는 데 있다. 즉 창조주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의 상대를 중심으로 존재하시면서 상대의 관점의 입장을 바꾸어서 관계적으로 순종하면서 연합된 일체의 존재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의한 곳에는 임재하지 않으신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죄가 없고 의롭다고 칭한 후에 성령 하나님이 그 몸속으로 임재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칭의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이러한 서로의 관점의 입장을 성령을 통해 사람에게도 적용시키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영적인 예배의 원리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 상대방을 사랑으로 궁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며 그들을 이해하시며 용서하시었다는 것이다. 처음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동물들을 데리고 나와 그들을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동물의 이름을 정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런 성령 관점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죄 때문에 사람의 영이 죽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이 죄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 되어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므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었다. 이것을 믿는 사람 안에 성령을 부으셔서 예수님의 관점을 이해시킨 것도 성령 관점 관계 원리가 된다. 더 나가아 교회를 만들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어 예수님의 공동체적 사역인 교회의 관점의 이해가 일치되게 하신다. 성령 관점 관계 원리는 공동체적 원리로 예수님을 나타내서 교회가 가족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며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적 삶을 통해 반사시킨다. 그 예배적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피조물이 하나님을 즐거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 관점 관계 원리이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하여 계시되는 것이 때문에 비밀이 된 것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에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대가를 치르신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죽었던 사람의 영이 예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을 통해 사람에게서 살아난다. 성령 하나님이 사람의 영을 살리고 같이 내재하게 되며 성경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죽었던 영이 성령 하나님 임재와 성경 말씀을 통해 다시 살아났으므로 성령 관점의 관계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생명을 얻는 이것이 바로 중생이다.
그리고 다음은 성화의 과정을 겪게 하신다. 이때부터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성화의 과정이 일어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삶으로 예배되며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바로 성화의 과정 속에 일어난다. 이 성화의 과정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 하나님과 같이 창조되며 역사하신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도 같이 역사하시 었다.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영을 통해 각자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사람은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 하면 관점의 이해가 생긴다. 성화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일어나기 때문에 각기 믿는 사람마다 성령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마치 나무가 성화의 과정으로 살아서 예수님 안에 있게 되면 계속 예수님과 닮아지게 된다. 예수님처럼 삶을 살고 예수님이 말씀이 성령으로 삶으로 예배로 기도로 습관이 되어 성령의 열매 사랑과 인내와 소망 같은 성격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게 회복되게 된다. 그래서 성령 관점 관계 원리가 된다. 또 이 성령 관점 관계 원리는 삼위 하나님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사랑과 용서와 궁휼이 일어나는 원리로 나타난다. 아버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는 십자가의 피로 순종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느낄 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란 것을 알게 되어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성격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성경을 보면서 그대로 우리에게 투사시키시길 바라신다. 이것이 믿는 사람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성격을 표현하시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신다.
그렇다면 사람이 복음을 통하여 성령 관점 관계 원리를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성령 관점 관계의 기본원리이다. 성령 하나님의 기본은 믿음으로 부르심과 관계 회복에 있으며 그 결과는 성도의 회심이다. 두 번째 단계는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 단계가 있다. 이 단계는 성령 하나님이 부르심을 믿음으로 받은 성도에게 제자 훈련을 받아 가도록 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성령 관점의 관계의 해석 단계이다. 이 단계는 성령 하나님이 제자로써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해석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려면 칭의에 대하여 중생에 대하여 해석하고 증거 하게 하는 그리스도 영성 형성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기도와 예배, 설교를 통해 말씀을 해석하는 힘이 생긴다. 성령 하나님이 해석해 줌으로써 은혜가 더욱 풍성해지며 이전에 받은 칭의와 중생의 은혜가 더욱 생명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영성 형성을 충만하게 한다. 네 번째 단계는 성령 관점 관계의 적용 단계이다. 이 단계는 성령 하나님이 사명을 받도록 인격적으로 이끄시고 그 사명을 통해 순종의 종이 되도록 하는 단계이다. 성령의 열매가 충분히 맺어지는 단계이다. 각 단계별로 자세한 설명을 다음 절에서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