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청소년한테 믿음의 성벽 이 세워지는 교육 플랫폼이다. 이 교재 시리즈 12권의 책들은 점점 더 예수님의 관점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적게 하시었다. 교재의 시작은 신문 연재에 낸 내용과 각 교재의 질문과 응답으로 방대하게 내용을 다시 각색하고 좀 더 쉽게 만들어 플랫폼을 통해 교재를 업그레이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하여 기존에 적었던 하나님이 주신 청소년 교육과 전도의 은혜를 이 세대에 부모님과 사역자, 성도, 교사를 위한 12 권의 플랫폼 교재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 플랫폼 책 시리즈는 부모님과 사역자, 성경 교사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 폰 환경에 청소년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주며 성경교사들에게 서로의 방법론을 공유하면서 같이 만들어 가도록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성경을 읽는 방법과 원리를 통해 청소년과 초신자들에게 성경이 주는 아름다운 숲을 보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이 과정은 지금 이 순간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중독된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통해 믿음의 성벽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 적었다. 어쩌면 이 책의 목적은 성령 하나님이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의 영과 같이 임재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청소년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하루에 10분씩 성경을 읽는 시간을 내게 하면 된다. 성경 말씀 전체를 예수님의 관점으로 보도록 성령 하나님이 이끌게 하면 된다. 

두 번째 이 과정은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비전을 보게 하였다. 마치 전체 성경 말씀을 숲으로 보고 숲에 있는 길을 알려 주는 데 있다. 이것을 성경 관점 관계 원리로 보는 비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성경을 통해 청소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비전과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성경 관점이 관계를 통해 예수님의 의가 들어오면 아버지 하나님이 각자 청소년들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적게 된다.

세 번째 이 과정은 성경 말씀 전체를 통해 받은 성령의 은혜로 각 나무뿌리에서 줄기로 찾아가게 한다. 성경을 뿌리에서 기본 줄기로 찾아가서 성경의 가지 관점의 원리로 보면서 세상을 해석하게 한다. 성경이 뿌리 관점의 기본 줄기에서부터 가지로 이어지는 나무처럼 성령이 해 주시는 말씀을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는지 순서 없이 적었다. 이것을 성경 관점 해석 원리라고 한다. 이를 통해 세상이 성경 관점 관계 원리에서 성령님의 눈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해석되게 하며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유혹에서 믿음의 능력으로 승리를 갖게 되는지 적었다. 

네 번째 이 과정은 성경 각가지에서 얻은 해석된 지혜가 적용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 적었다. 예수님의 관점이 성령의 임재와 같이 혼연일체가 되어 청소년들이 가질 직업이나 가치관으로 적용되게 하였다. 이것을 청소년부와 청년부가 있는 교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의 관점을 청소년들에게 적용하는 원리가 있다. 이것을 성경 관점 적용 원리라고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아버지의 관계가 회복되는 탕자의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적었다. 청소년들이 가진 꿈과 비전이 어떻게 세상에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적용사례를 만들어 IT와 접목시키어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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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 29:14~15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 

질문) 지금의 스마트폰 중독 시대는 성경에서 어떤 시대와 같은가?

지금 이 세대에 인터넷과 스마트 폰 미디어등이 보여 주는 세상은 거대한 바벨론 같다. 옛날 사로 잡혀서 포로로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면 마치 지금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마찬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낮 설은 곳에서 자기 언어를 제대로 못 쓰고 살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거룩하고 장엄한 이스라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두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문화적 가치관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원래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 생각하여 다른 이방 민족을 개나 돼지처럼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거대한 땅 바벨론에서 이 리 치고 저리 치면서 그들의 문화적 가치관은 변하여 갔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의 자긍심은 없어지면서 점점 더 그들의 생각은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영원한 이방인으로써 큰 나라 바벨론으로 오면서 하나님을 찾은 영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남 유다에서 끌려 온 이후 자기 주관이 없는 그런 포로 생활 속에서 그들은 희망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세운 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주변 상황에 민감하여 안정된 생활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도 망각한 채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그들의 주체성을 상실이 되어 갔다. 

지금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수많은 젊은 청소년과 청년 사용자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거대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포로자처럼 거대한 정보의 홍수 묻혀 산다. 스마트폰과 패드 그리고 컴퓨터 게임 같은 미디어를 통해 SNS와 웹 포탈과 미디어에 접속한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하나님의 뜻에 세워서 가르쳐 알아야 할 곳에서 세상이 주는 혼탁한 정보로 매일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살아간다. 또 그들은 거대한 정보의 네트워크에 매일 물들고 그들의 존재감과 그들의 영혼은 세상에 모든 눈으로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과 청년들은 오늘 그다음 날도 매일 같은 스마트폰과 SNS에 중독이 되어 미디어에 접속하여 살아가고 있다. 매일 청소년과 청년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포로수용소처럼 사탄이 주는 정보로 매일 잡혀서 산다. 또 가정에 있는 부모들은 이런 청소년과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해 지적만 한다. 

점점 더 청소년과 청년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잃어버린 영혼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아무 주관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망각하면서 살아갔다. 이렇듯이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백성인 것조차 모르고 망각하면서 화려한 세상이 주는 유혹에 휘들려 그들의 영혼의 진리와 길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이런 세대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함께 하는 사람은 없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잘 못된 것을 지적하고 지시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마치 바벨론에서 노예처럼 산 이스라엘 사람과 같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예레미아 선지자를 일으키고 사로 잡혀 떠 났던 예루살렘으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50년 이상의 희년이 지난 간 후에 세 번에 걸쳐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 에스겔을 통해 성경공부와 예배의 부흥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선생님과 부모님을 깨우쳐서 선지자처럼 청소년과 청년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 폰이 주는 악한 영들에게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회복시키면서 믿음의 성벽을 세워야 한다. 

인터넷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소통이다. 원래 인터넷의 시작은 끊어진 소통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연구소끼리 끊어진 곳에 다른 곳을 연결하여 우회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끊어진 곳을 이어가는 소통을 일으킨 것이 인터넷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의 복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이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하는 소통과 회복의 성격이 나타난다. 그런데 인터넷의 소통 안에 사탄은 중독되는 악한 영을 넣었다. 많은 유혹의 것을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 넣어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악한 영향을 주고 있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이런 많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소통을 중독으로 바꾸는 악한 사탄의 영에 끌려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바벨론 같은 곳이다.

질문) 청소년과 청년들이 과연 누구에게 끌려갔는 가? 

요한 계시록 18:2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며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으며 

물론 요한 계시록의 바벨론은 다른 곳이다. 그러나 마치 인터넷과 스마트 폰은 요한 계시록의 바벨론과 흡사하다. 특히 수많은 이단과 하나님과 대항하는 영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많은 정보들이 이미 이단의 의해서 더러운 영이 모여서 그들이 판을 치고 있다. 특히 새처럼 왔다 갔다 하는 배교인들이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모인 곳이 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복음에 많은 이단이 선한 것에 악한 것을 넣어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과 같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이단에 노출이 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생명과 진리의 길인 예수님에 대하여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악한 영이 그들을 종처럼 잡아가는 것과 같다. 더 큰 문제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중독 때문에 가정에서 소통이 끊어지고 학교와 교회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대화가 단절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중간에 선지자 역할을 하는 부모님과 성경 교사의 역할이 힘들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질문) 그렇다면 어디로 청소년과 청년들을 다시 데리고 와야 하나? 

인터넷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소통의 끊어진 곳을 연결하라는 취지에서 만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원이었다. 이것을 다시 위의 성경 본문으로 적용하면 원래 하나님이 소통을 위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뜻인 성경을 전하여할 곳에 다른 악한 것이 들어가 그들이 끌려간 것과 같다. 원래 인터넷을 해석하면 이 뜻은 인터넷이 처음으로 시작한 의미의 때이다. 끊어진 것을 연결하는 인터넷의 원래 뜻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성경 말씀에 선지자를 세우신다는 것은 이것은 인터넷의 초기 개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죄악으로 소통이 끊어질 때 선지자를 세운 것처럼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이 선지자가 되어 원래 인터넷의 개념을 사용하여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가정과 교회, 학교에서 예수님의 관점으로 성경의 말씀을 듣고 읽도록 하여 예수님 복음 안에 믿음의 성전과 성벽을 세우라고 하신 것이다. 위의 예레미야서에 나온 성경 구절을 지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성경의 관점과 영적으로 다시 적용한다. 원래 선지가가 이야기한 사로 잡혀 떠 났던 그곳은 예루살렘 성을 뜻한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사로 잡혀 떠 났던 곳은 원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 안에 믿음의 성벽이 생긴 곳을 말한다. 이것은 마음에 새긴 율법이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말한다. 예레미아가 선지자를 세운다는 것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믿음의 성벽인 복음이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선지자이면서 제사장인 왕 중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적인 눈으로 보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다시 바벨론 같은 인터넷에서 돌아오게 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라는 것이다.

질문) 어떻게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인터넷을 통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 

실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기 이전에 많은 이스라엘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70년 후에 돌아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피로써 대가를 치르시어 이것을 믿는 사람이 의롭다 하신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만드셨다.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님의 복음의 길로 다시 소통하게 되었다. 그 길이 바로 복음이다. 지금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그 네트워크가 바로 성령의 네트워크이며 교회 공동체의 네트워크이다.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가 진정한 네트워크로 끊어진 곳을 다시 연결하여 돌아오게 한다. 끊어진 것을 다시 연결하고 소통하는 것은 초기 인터넷 웹의 진정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끊어진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 소통하고 성벽을 재건하여 다시 세워야 한다. 그 모는 재건된 성벽이 연결하여 청소년과 청년들이 복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마치 이 개념은 원래 진정한 웹의 개념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뜻과 같다. 

이것을 교회가 초기 진정한 웹의 개념으로 연결되어 청소년과 청년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야 한다. 교회가 웹으로 가서 선지자처럼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다시 해야 한다. 교회가 웹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마치 교회가 세상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세상 풍조가 교회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지는 복음이 세상에 들어가 빛이 되는 것과 같다. 웹이 가진 악하고 음란한 문화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진 복음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선지자 같이 믿음을 세우는 성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모님과 성경 교사들과 사역자들은 스마트 폰으로 웹을 사용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믿음의 성벽을 세워주게 해야 한다.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님의 모퉁이 돌을 이용하여 부모님과 성경 교사, 교역자들이 합심으로 성령이 거하는 장소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 터는 선지자와 사도들이 본을 보인 터로서 믿음의 성벽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맞게 끊어진 청소년과 청년들의 믿음을 굳건히 세워가는 모든 부모님, 성경교사, 사역자들의 공동체를 온라인과 디지털로 연결하는 개념이 필요하다. 이것은 바벨론 같은 인터넷의 세상에서 믿음의 성벽을 디지털 플랫폼화 시키는 개념과 같은 것이다. 이 디지털 성벽의 개념이 성경 교육 플랫폼으로 만들어지며 전도 플랫폼으로 진 것이 디지털 믿음의 성벽이라고 한다. 결국 청소년과 청년들을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이므로 선지자처럼 초기 인터넷의 개념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통해 믿음의 성벽을 굳건히 세우게 해야 한다. 디지털 믿음의 성벽은 초기 끊어진 네트워크를 복구시키기 위해 인터넷이 생긴 것처럼 다음 세대의 믿음의 성벽을 세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디지털 믿음의 성벽은 하나님이 끊어진 인간에게 선지자를 보내신 것처럼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이다. 디지털 믿음의 성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끊어진 네트워크를 완전하에 복구하시기 위해 내려오신 것을 알리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복음을 세워 줄 것이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죄 때문에 끊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네트워크를 마치 웹이 끊어진 관계를 복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예수님이 선지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인간의 죗값을 치르시고 다시 하나님과 인간이 네트워크가 회복되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마치 처음 끊어진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넷을 사용하였던 인터넷 웹의 근본 개념으로 이것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터넷을 지금의 세대에 주시고 다음 세대에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시는 뜻을 알아야 한다. 지금 세대에서 인터넷을 어떻게 성령 관점의 원리로 해석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질문) 그렇다면 지금 시대는 어떤 기술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영향을 주는가? 

질문) 사탄은 중독을 이용해 무엇을 하는가? 

현대 기술의 발달은 엄청난 속도로 정보가 증가한다. 스마트폰과 SNS는 대표적인 예이다. 다음 세대는 글로벌 시대가 될 것이다. 한 기업이 무엇인가를 성공하면 그것이 전 세계에 적용되는 시대이다. 페이스북의 예를 들면 옛날 그 누가 이것을 생각할 수 있었을 까. SOCIAL구조를 12억 이상 매일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충성스럽게 내용을 입력하게 한다. 사회적 구조의 인터넷이 지금 이 세대에 만연하게 퍼져 있다. 트위터는 나의 감점을 좀 더 소통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들을 매일 공감하면서 스마트 폰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입력한다. 몇 달만에 전 세계 SNS로 만든 정보가 전 세계 몇 세기 정보를 모은 것과 더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따른 정보의 홍수와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스마트 폰 중독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생기는 물질적 풍요, 편리한 정보 생활이 문화와 관습이 되어 인간이 가지는 창조적이고 자연적이며 관계적인 소통의 자원을 중독 중세로 파괴되고 있다. 다음 세대는 마치 정보의 홍수 속에 사람들은 중독적인 방황을 하면서 디지털 외톨이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사탄은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에 사람들의 관계와 영혼을 파괴한다. 무분별한 정보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게 하는 정보를 사람들끼리 주고받게 하여 정욕의 눈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 이것을 받아들인 다음 세대의 영혼은 중독 증세로 밤잠 안자며 아파하고 고통스럽게 영혼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와 선한 협력의 관계성을 잃어 영혼이 죽어 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다음 세대에 이어 주어야 할 승리한 복음의 자원을 전혀 주지 못하거나 전혀 다른 형태로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다음 세대에 더 나쁜 디지털 자원으로 정욕의 눈을 밝히는 충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점점 정신적인 영혼의 공허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다음 세대를 이 끌어가야 할 수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의 자살이 이것을 증명한다. 다음 세대가 사탄이 주는 문화에 무너져 가고 있고 수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음 세대에 승리한 복음 가르치라고 하시었다. 영적 백신은 복음을 주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죄와 사망으로 가는 다음 세대를 구원해야 한다. 이들을 구해야 하는 것이 지금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질문) 그렇다면 현세대들에게 다시 복음을 어떻게 알리며 다음 세대에게 성경을 어떻게 가르 칠 것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후에 이 땅과 모든 세대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공통의 복음을 주시었다. 다음 세대도 동일한 하나님 나라 권속이며 동일한 하나님 형상으로 만든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가족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모퉁이 돌이 되시고 모든 성전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분 안에서 성전을 만드시고 그분 안에서 성전끼리 연결되는 소통의 네트워크를 만드시라고 하신다. 성도가 소통이 되는 교회 공동체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를 만드시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지어 저 가게 하신다고 하시었다. 예수님 안에서 함께 네트워크를 연결하게 하시며 하나로 지어져 가게 되게 한다. 하나님은 다음 세대도 하나로 지어져 가게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복음을 다음 세대에게 소통하면서 알아듣도록 그 세대에 주어진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 

이미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오감으로 소통의 도구와 네트워크를 만드는 능력을 주셨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발전은 이미 세상에 차고 넘친다. 하나님이 이것을 소통의 도구를 준 때가 바로 코로나 이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코로나 같은 세계 대역병이 스마트 폰과 인터넷의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대가 되면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되었을 까 생각하면 이 소통의 도구가 바로 은혜로 여기어진다.

코로나로 인하여 이제 모든 교회 공동체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하면서 조금씩 힘들지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제 교회가 시대에 맞추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같이 연동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이 플랫폼은 또한 분명히 다음 세대를 맞추어 같이 나가야 한다. 모든 교회가 이 플랫폼을 같이 쓰며 성경의 컨텐트를 다음 세대에게 해석하고 훈련하게 해주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성경의 말씀을 가르친 세대에게 별처럼 빛나게 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 성경이 가진 위대한 힘은 예수님이 어두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처럼 말씀으로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이런 성경의 컨텐트 중에 다음 세대에게 중요한 말씀이 무엇이 인지를 알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중요한 말씀을 인간들에게 주시고 세상의 모든 자원 즉 식물, 동물 생물 등을 지배하라고 하시었다. 창조 후부터 인간들은 산업, 문화나 관습 기술을 통해 이 자원을 소통하면서 모든 자원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인간들이 가진 욕심의 관점으로 주어진 모든 자원을 문화를 만들고 관습을 만들어 잘못 낭비하고 파괴해갔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와 관습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절실하다. 그 세대에 받은 자원을 비유하려면 그들의 생활에 직결되는 문화나 관습으로 비유를 하여만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성경을 이 시대에 주어진 문화와 관습에 맞추어 어떻게 비유를 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무엇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본질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 세대에 맞추어 해석하며 그 복음의 뜻을 알리는 데 있다. 예수님이 당시 시대의 문화와 관습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한 이유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그 당시 어두운 시대에 비치신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쉬운 언어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중요하다. 지금의 성도들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 예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젊은 세대가 좀더 정확하고 쉽게 알기 위해 설명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와 관습등이 반영된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이 지금의 문화와 관습으로 적용시키는 것이 지금 성도들의  할 수 있는 전도가 된다.

 

질문) 성경 전체에 흐르는 비밀 같은 성격 같은 원리는 무엇일까?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예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성경이 사람들에게 계시될 때는 성령의 관점으로 읽어 야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만든 것은 성령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 이렇게 성령의 관점으로 읽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에서 아들로 오신 것처럼 같은 관계 원리인 성령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읽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배로 회복되도록 만드셨다.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아들을 보낸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사랑을 표현하고 세상 사람들과 관계가 회복되면서 예배하시길 바라신 것이다. 우리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시길 바라신다. 사람이 생명을 풍성하게 얻고 풍요로운 자유를 마음껏 누리려면 예배자가 되면 된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예배자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것을 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예배하도록 만들었는데 죄 때문에 영이 죽어 예배자의 삶을 살지 못하였다. 

우리가 예배자로서 회복하려면 먼저 영이 살고 그 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삶이 중요하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영적 예배이다. 이렇게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가 바로 관계 회복이 시작이다. 그 영적 관계 회복의 원리는 성경에서 나무의 기본 줄기와 같더, 마치 성경을 읽을 때 숲에서 전체를 보고 호수로 뻗어 있는 시냇가 같은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부단히 생각하여 보았다. 숲에서 호수로 안내하는 시내 같은 것이 있다. 즉 인간과 하나님의 영적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영성의 기본 원리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원대한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작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이것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라고 하고 싶다. 성경의 비밀 원리가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작용되는 것은 각자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은혜가 서로 다르다. 마치 수돗물이 원천의 물에서 수도관을 타고 오는 것과 같이 여러 갈래로 성령이 주는 생명수의 양은 각각 다르다. 이런 원리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만들었으니 성경을 읽은 사람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를 통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필자 같은 미천하고 작은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게는 가 하지만 좁은 생각을 가진 필자가 느끼고 추측한 것은 각자의 비밀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 관점 관계 비밀 원리라고 부르고 싶다. 즉 성령 관점 관계 원리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과의 영적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사람의 몸이 산제물로 예배를 드리게 하시었다. 이 연합을 위해 성령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말씀에 있는 생명수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원리에 성령과 생명의 원리에 코칭의 원리를 가미하여 말씀을 질문과 응답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시키는 데 있다. 즉 창조주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의 상대를 중심으로 존재하시면서 상대의 관점의 입장을 바꾸어서 관계적으로 순종하면서 연합된 일체의 존재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의한 곳에는 임재하지 않으신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죄가 없고 의롭다고 칭한 후에 성령 하나님이 그 몸속으로 임재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칭의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이러한 서로의 관점의 입장을 성령을 통해 사람에게도 적용시키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영적인 예배의 원리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 상대방을 사랑으로 궁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며 그들을 이해하시며 용서하시었다는 것이다. 처음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동물들을 데리고 나와 그들을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동물의 이름을 정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런 성령 관점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죄 때문에 사람의 영이 죽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이 죄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 되어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므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었다. 이것을 믿는 사람 안에 성령을 부으셔서 예수님의 관점을 이해시킨 것도 성령 관점 관계 원리가 된다. 더 나가아 교회를 만들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어 예수님의 공동체적 사역인 교회의 관점의 이해가 일치되게 하신다. 성령 관점 관계 원리는 공동체적 원리로 예수님을 나타내서 교회가 가족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며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적 삶을 통해 반사시킨다. 그 예배적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피조물이 하나님을 즐거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 관점 관계 원리이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성경을 통하여 계시되는 것이 때문에 비밀이 된 것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에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대가를 치르신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죽었던 사람의 영이 예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을 통해 사람에게서 살아난다. 성령 하나님이 사람의 영을 살리고 같이 내재하게 되며 성경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죽었던 영이 성령 하나님 임재와 성경 말씀을 통해 다시 살아났으므로 성령 관점의 관계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생명을 얻는 이것이 바로 중생이다. 

그리고 다음은 성화의 과정을 겪게 하신다. 이때부터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성화의 과정이 일어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삶으로 예배되며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바로 성화의 과정 속에 일어난다. 이 성화의 과정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 하나님과 같이 창조되며 역사하신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도 같이 역 사하시 었다.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영을 통해 각자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사람은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 하면 관점의 이해가 생긴다. 성화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일어나기 때문에 각기 믿는 사람마다 성령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마치 나무가 성화의 과정으로 살아서 예수님 안에 있게 되면 계속 예수님과 닮아지게 된다. 예수님처럼 삶을 살고 예수님이 말씀이 성령으로 삶으로 예배로 기도로 습관이 되어 성령의 열매 사랑과 인내와 소망 같은 성격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게 회복되게 된다. 그래서 성령 관점 관계 원리가 된다. 또 이 성령 관점 관계 원리는 삼위 하나님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사랑과 용서와 궁휼이 일어나는 원리로 나타난다. 아버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는 십자가의 피로 순종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느낄 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란 것을 알게 되어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성격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성경을 보면서 그대로 우리에게 투사시키시길 바라신다. 이것이 믿는 사람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성격을 표현하시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신다.

 그렇다면 사람이 복음을 통하여 성령 관점 관계 원리를 사람에게 적용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성령 관점 관계의 기본원리이다. 성령 하나님의 기본은 믿음으로 부르심과 관계 회복에 있으며 그 결과는 성도의 회심이다. 두 번째 단계는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 단계가 있다. 이 단계는 성령 하나님이 부르심을 믿음으로 받은 성도에게 제자 훈련을 받아 가도록 하는 단계이다. 세 번 째는 성령 관점의 관계의 해석 단계이다. 이 단계는 성령 하나님이 제자로써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해석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려면 칭의에 대하여 중생에 대하여 해석하고 증거 하게 하는 그리스도 영성 형성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기도와 예배, 설교를 통해 말씀을 해석하는 힘이 생긴다. 성령 하나님이 해석해 줌으로써 은혜가 더욱 풍성해지며 이전에 받은 칭의와 중생의 은혜가 더욱 생명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영성 형성을 충만하게 한다. 네 번쨰 단계는 성령 관점 관계의 적용 단계이다. 이 단계는 성령 하나님이 사명을 받도록 인격적으로 이끄시고 그 사명을 통해 순종의 종이 되도록 하는 단계이다. 성령의 열매가 충분히 맺어지는 단계이다. 각 단계별로 자세한 설명을 다음 절에서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