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관점을 다시 살리시게 하시어 인간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인간이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하시며 동일한 성령의 성격을 가지게 만드셨다. 사람의 개별적 자아나 정체 성안에서 성령님은 인격적인 관계로 함께 하신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정체성은 성령 하나님을 만나서 참된 은사와 비전 꿈을 주신다. 성령님의 이런 인격적인 관계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성령 관점 관계 비전 원리의 영성이다. 우리의 주체성이나 정체성을 그대로 두고 성령님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도 또 따른 보혜사로 인격을 가지고 계신다. 결코 강제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하나님은 모든 성도가 서로 다른 하나님 나라 존귀한 백성으로 만드신다. 거기에 영적 성장을 시키 시기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비전을 주신다.
성령 관점 관계 비전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꿈을 주시고 비전을 보게 하신다. 이 성경을 볼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비전을 갖게 된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 하지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비전을 가지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 관점 관계 비전 원리의 영성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정체성을 가진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것에 가장 기초적인 원칙은 그 하나님의 형상의 꿈을 제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이것이 성령이 주신 비전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 안에 성령 하나님이 들어가 그 형상을 살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되고 비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제자의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관계가 회복되게 하는 삶으로 꿈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와 선교를 하고 싶어 하며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그들의 죄에서 용서와 사랑을 받게 하고 싶어 하는 꿈이 생긴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아가고 비전을 가지면서 실행하는 과정에서 생명수의 은혜를 느낀다. 성령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고 관계 회복의 기적을 믿을 때 실체가 생명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성령 관점 관계 비전 원리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이유를 알게 한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계획하고 예언을 이 루어시는 지 비전 원리를 성경 말씀으로 증거를 경험하게 된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그 사랑이 보인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이러한 말씀은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 원리를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교통 하심이 교회 무리와 제자의 무리가 은혜의 기본 줄기를 만드는 데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주신 은혜가 넘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넘쳐 이웃 사랑으로 형성된다. 여기서부터 사랑을 이루는 성령의 교통이 시작된다. 여기서 교통은 헬라어로 코이노 이아로 쓰인다. 코이노 이아는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사랑과 은혜로 깊은 교제를 나누며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신 성경을 아들의 관계로 보면 그 말씀이 살아서 비전과 생명으로 온다. 그 생명은 사랑으로 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이웃을 사랑하는 성령의 교통 코이노이아가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의 비전이 같이 있어야 한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성도 안에 생명 되신 비전을 보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올바르게 먹고 소화를 시키며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는 비전을 가지고 자라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비전의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청소년과 청년들은 영적으로 성장 게 된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서 새 언약을 주신 것과 같다. 내 안이 성전이 된 것이며 내가 교회가 된 것이다. 말씀이 비전을 가지게 되면 내 안에서 실체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예수님 관점의 비전을 가지며 말씀 안에서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게 된다. 마치 씨가 나무가 되어 삼십 배 육십 배 자라는 것과 같다. 이런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 원리는 성경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하는지 구원의 기초를 세상에 제자로 써 알려 주는 방법론이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좋은 비전의 습관은 마치 세상의 마른땅에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그 메마른 땅은 이 땅의 끝이며 예수님이 주신 대 위임 명령과 같다. 세성의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시었다. 선교가 가진 교회의 무리에 하신 명령은 거의 교회 정체성과 같다. 그러므로 제자가 가지는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은 전도와 선교로 이방의 땅에 교회 공동체의 씨를 심는 것과 같다. 그 씨가 잘 자랄 려면 땅이 기름 지어야 한다. 땅이 기름지려면 매일 거름을 주고 뒤엎어야 한다.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 원리는 성경의 말씀을 예수님 영의 관점으로 읽고 듣고 보게 하면서 세상을 향하는 꿈을 갖는 데 있다.
그러면서 성령 하나님이 주신 꿈은 이방의 땅에 교회를 만드는 것에 있다. 그 교회의 씨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기는 것이 제자들의 꿈인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자들은 거름을 주듯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성령 충만을 만들어 가게 하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명의 비전이 성경에는 많이 있다. 이러한 성경 비전은 거대한 숲과 같다. 성경을 읽을 때는 숲에서 적용할 수 있는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을 알게 하는 방법은 코칭 원리로 만들어 가야 한다. 거대한 숲에서는 사람들이 지름길만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름길을 찾다가 숲에서 길을 잃고 방황을 한다. 성령 관점 관계의 비전 원리는 하나님이 지름길에서 방황하다 지쳐 쓰러진 초신자들의 영혼을 위해 만들었다. 믿음을 가지었지만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영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전의 영성을 가지는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질문을 통해 응답을 찾으려고 영혼의 비타민처럼 힘이 되어 작은 시골 교회처럼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만드는 주제문과 비전문
질문) 성경 관점 관계 원리로 보는 구약 성경의 주제 사랑과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 예수님과 동일성을 가지는 것 이것이 성경의 최종 목표이다. 이 동일한 성격을 좀 더 알려면 왜 하나님께서 성경을 만드셨는지 이유를 알아보면 된다. 성경을 만든 이유는 성경의 주제 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질문) 성경책을 열고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주제 문은 찾을 수 있을 까.
성경을 한마디로 대표하는 주제 문을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이야기하셨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야기한 모든 것이 다음의 두 계명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질문)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한 이 주제를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지킬 수 있을 까.
하나님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만 이 문장을 우리가 이룰 수 있을 까. 이 중에서 뜻을 다한다는 것이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는 가.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를 볼 때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할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의 대한 감사가 나타난다. 얼마나 나 자신이 죄가 많은 지 얼마나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를 기다리시고 용서하시는지 알 수가 있다.
내가 그렇게 비워지고 옛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할 때 성령의 힘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점점 그 성령의 힘으로 능력이 생기어 성령의 열매가 일어나며 예수님을 닮아 간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볼 때 하나님과 같이 이웃에게 궁휼이 느끼고 이웃을 위하여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몸과 마음 뜻을 다하여 행동으로 옮긴다. 성령 열매가 사랑 안에서 그 안에 마음에서 눈으로 전달된다. 눈으로 전달된 사랑은 손으로 옮겨진다. 그 눈을 관점이며 비전이라고 한다. 성경을 이 하나님의 관점이며 비전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비전이다. 이것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만든 비전이라고 한다.
구약과 신약의 구분 점은 바로 하나님의 이런 성경에서 만 들어진 것이다. 구약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관점을 주시었다. 그 세우신 인물의 입장 그들의 비전에서 생각하라 하신다. 언약 속에서 믿음의 관점으로 가지는 비전에는 아브라함을 세우셨다. 언약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갈 바를 모르는 아브라함의 눈에 믿음의 비전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구속하신 율법의 관점에서 모세는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비전을 보고 광야 생활을 하였다.
이스라엘의 패망과 유다의 예언 속에서 회복 관점의 비전에는 이사야를 세우시고 이 세상을 회복의 비전으로 메시아 탄생과 십자가 예언을 하였다. 우상 속에서 회복의 관점에는 엘리야를 세우고 절망 속에서 희망의 관점 비전에는 예레미야이며 물질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는 부자의 관점 비전에는 욥을 세우셨다. 죄악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는 지도자의 관점 비전에는 다윗을 세우고 부와 지혜를 아는 지혜 자의 관점 비전에는 솔로몬을 세우고 개척자의 관점 비전에는 여 호수 와를 세우시고 포로자의 관점 비전에는 다니엘을 세우시고 회복 자의 관점 비전에는 에스더를 세우시고 전달자의 관점 비전에는 요나를 세우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질문) 여러분의 입장에서 비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서로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자 하신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입장 속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끄신다. 구약에서는 선택한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이끄시면서 그들의 경험을 적으시면서 나보고 그들이 돼보라 한다. 과연 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하신다. 네가 너희에게 나를 믿으면서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실패하면서 때로는 믿음과 회복의 희망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을 적어 보니 이 것을 보고 험악한 세상 속에서 네가 보낸 독생자 예수를 믿을 때 이런 사람들을 비전으로 삼아 끝까지 승리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 이 사상은 경험을 중시하는 히브리 즘의 가장 전형적인 태도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런 경험을 성경에 심고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입장을 바꾸어 보면서 같은 어려운 상황이 되면 나침반처럼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시는 방향이 보인다. 숲에서 시냇가를 찾아가게 된다. 그 시냇가의 끝에는 바로 호수가 있다. 호수는 예수님이다. 구약은 어쩌면 물이 흘러가는 시냇가를 통해 호수를 알린다.
신약은 이 호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볼 때 신약은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예수님이 되셔서 완전히 우리가 되시고 똑 같이 사시고 돌아가셨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되시었다. 하나님이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우리가 되시고 우리와 똑같이 우리의 죄를 안으시고 짐 어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살점이 찢기는 고통으로 돌아가시었다. 그리고 전능한 힘으로 다시 사셨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아닌 내가 되시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닌 당신이 되시었다. 그리고 내 죄와 우리의 죄를 안고 돌아가셨다. 내가 죽어야 될 존재 즉 죄 때문에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 속건죄가 되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모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세상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사탄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고통을 받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예수님이 우리 되심 때문에 완전히 해방되었다. 묶였던 자들인 우리는 자유와 생명을 얻었다. 묶였던 자들인 나도 자유와 생명을 얻었다. 묶였던 자들인 당신도 자유와 생명을 얻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면서 십자가를 같이 지고 따라오라 하신다. 성령의 관점의 원리로 보며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겪으신 세상이 주는 고통과 고난을 통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으신 십자가가 내가 보는 십자가로 안 정 된 삶을 포기 못하는 육의 관점에 잡혀 있다. 이제부터 당신은 육의 관점에서 항복해야 한다. 당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항복해야 한다. 당신의 가치로 세상을 생각하는 것을 항복해야 한다. 당신의 입으로 남을 단죄하는 것에 항복해야 한다. 당신의 손으로 했던 모든 것에 항복해야 한다. 당신의 눈과 마음 입술에 예수님의 숨결이 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예수님께 항복하지 않으면 자유자가 될 수 없다. 생명도 없다.
예수님은 당신의 눈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눈으로 세상을 보시길 원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귀가 아닌 예수님이 들은 병들은 자와 가난한 자를 고통을 듣고 작은 자를 섬 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입이 아닌 예수님 관점의 입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길 원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손이 아닌 예수님 관점으로 불쌍한 모든 사람들을 돌보시길 바라신다. 먼저 시작은 당신은 눈으로 보는 것에 항복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더 알 수가 있고 예수님의 입장이 돼서 세상의 고통을 듣는다. 오직 당신이 할 일은 항복하는 거 밖에 없다.
성령 관점 관계 원리 예수님의 눈으로 보기 위한 항복 연습이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 입장으로 보는 신약과 구약 즉 하나님의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비전이 생갈 것이다. 이 비전이 보이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관점의 원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구약은 어찌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가를 나타내시는 것 같다. 창세기에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 신약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에 대해 나타난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다. 그분이 나와 당신을 사랑하시어 약할 때로 약하게 보이는 인간으로 오셔서 죄 없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시었다. 당신의 눈으로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쓰시면서 십자가을 짐 어진 그분의 발자국을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눈물이 나는 것은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이렇게 까지 하실 까 당신은 생각해야 한다. 이제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드린 기도와 삶의 예배로 비전을 가지며 예수님의 사랑을 완성해야 한다.
이 비전을 위한 하나님의 성령 관점 관계 원리가 바탕이 되게 하시고 이론을 만드시고 신약은 그 성경 관점 관계 원리 관점의 원리를 이론에서 행동으로 실천하시며 완성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 관점으로 만드는 비전 선언문을 만들어서 당신의 이름으로 사인하면 된다
이사야 8:16 나는 제자들이 보는 데서 이 증거 문서를 묶고 이 가르침을 인봉 한다. 비전 선언문의 모든 목표가 이 하나님의 성령 관점 관계 원리 관점과 비전의 원리를 전달하는 것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이 책의 내용들은 이런 성령 관점 관계 원리 관점의 원리와 비전의 원리가 스며 있다. 그리고 이것을 비밀로 해야 한다. 문서로 하여 인봉 해야 한다. 이 문서에는 관점과 비전의 원리를 통해 인생의 목표가 정해진다. 이 것을 증거 문서로 정했으면 한다. 내가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아닌 적어서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관점을 통해 세상에서 내가 태어난 목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이 비전에 성령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구체적 직접적인 증거 가지고 인봉 해야 한다. 이것이 비전 선언문이다. 비전은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는 것을 설명한다. 선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말한다. 이것이 이제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노라 라고 세상에게 공표하고 하나님과 약속을 하게 한다.
잠언 29:18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사도행전 2:16 오히려 대언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니라, 일렀으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 아들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어라.
비전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성경을 쓰고 기록하시었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이다. 성경의 저자가 다 틀리지만 모두 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초로 하여 비전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읽고 성경을 묵상하며 나에게 비친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성령 관점 관계 원리이다. 옛날의 선지자도 막연히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초한 환상과 계시를 받고 외쳤다. 지금의 이 순간의 사도행전에 쓰여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을 부어 주신다고 하시었다. 성령의 임재가 임하면 하나님의 아들들 즉 믿는 사람들은 대언을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내용이 비전으로 보여 대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전 선언문이다. 이 비전에는 환상이 보인다. 어떤 환상이 보이는가? 하나님의 눈으로 보이는 천국이 이 세상에 임재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눈과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다. 비전 선언문과 함께 이 책에는 많은 시편이 있다.
질문) 다윗은 왜 시편을 썼을까?
다윗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글과 시로 옮기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과 일치됨을 직접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그의 계보에 영원한 왕국이 있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약속하게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다. 그의 시편을 보면 금과옥조 같은 시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를 죄인이라 지칭하며 용서를 구한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감화를 통해 그에게서 하나님의 마음을 관점으로 알게 하는 시편을 쓰게 한 것이다.
이제 여러분도 다윗처럼 당신의 마음을 시로 쓰게 하실 것이다. 잘 쓸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해하신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느낀 감정 그대로를 쓰면 된다. 당신 안에 있는 예수님의 영인 성령의 감화를 쓰면 된다. 그 관점 그대로가 하나님의 영의 눈으로 본 세상과 나에 대한 글이 된다. 이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필자의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이 길뿐이라 생각하여 많은 글을 성령 관점 관계 원리로 썼다. 구속자의 시편을 쓰든 기도를 쓰든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입장이 되어서 성경을 보는 시각을 좀 더 크게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작은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지……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성경을 단 한 번이라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적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는 시각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예수님의 시각으로 또 성경의 인물의 시각으로 보게 하여 모든 성경의 것이 이해가 되게 하려고 많은 글을 썼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죄에 빠지거나 실수나 유혹에 빠질 때 모든 것 단순히 인간의 실수가 아니고 왜 그렇게 죄를 지어야 하는지 그 시대에 내가 그들이 되어 보고 그 사람들이 겪었던 죄를 나도 똑같이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성경은 진정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당신을 말씀으로 구속하고 성령으로 자유 켸 할 것이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 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 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 전서 2:7~16
어찌 보면 이 원리 하나님의 지혜는 감추어졌던 비밀의 구원 계획이 만세 전에 준비가 되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지혜가 아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없어지고 하나님의 지혜는 영원하다. 우리의 귀와 눈 마음으로는 못 보는 것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계시어 하나님의 관점과 예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쉼을 쉬고 살아 계신다. 그러려면 모든 나의 생각과 지혜가 항복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오는 지혜는 우리가 직접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신 은혜는 성령 님을 통하여 우리의 귀로 하나님의 비전을 듣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생각하게 하신다. 나의 육이 생각하는 비전에 항복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육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이 주는 비전 안에 거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어 모든 비전을 알게 하신다. 이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영으로 본 것은 영으로 구별되고 분별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육에 속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만약 성경을 보고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말하는 행동하는 그 판단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이 판단하신다. 이 원리는 성경에서 숨겨진 비밀의 원리가 되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만이 알게 되며 이것이 진정한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그래서 이 책은 성령의 관점 원리 을 알아 가고 성령 관점 해석 원리를 알아서 성령에 속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성경의 해석이 되어 세상에 적용하면 성경 관점이 적용되는 것은 아주 쉽다. 성령 관점 적용 원리에 의해 하나님의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고 실천으로 옮기게 한다. 그 실천은 무엇인가? 나를 부정하고 항복하면 된다. 나의 육이 가지는 생각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능력으로 내 육을 이겨야 한다. 그러므로 육에 속하지 말고 즉 세상의 법칙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에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영을 생각하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은 이 책의 하나님 성령 관점의 원리가 이해가 될 것이다. 주의 마음은 그분이 우리의 관점이 되셔서 우리가 되신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세상이 사랑스럽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성령의 열매가 우리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다. 주님 이 외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사랑으로 안으시는 관점의 은혜가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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